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고르면서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12cm로 줄인다는 설정만 보고 가벼운 SF 코미디겠거니 했는데, 극장을 나오는 길에 꽤 오래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결국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기발한 설정, 그런데 웃을 수가 없었다
영화의 전제는 간단합니다. 노르웨이 과학자 요르겐 아스비욘센 박사가 개발한 다운사이징 기술, 즉 인간의 신체를 약 12.7cm 크기로 영구 축소하는 시술이 상용화된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란 원래 기업이 규모를 줄인다는 뜻의 경영 용어인데, 영화에서는 인간의 몸 자체를 줄인다는 의미로 전용됩니다. 자원 소비를 극단적으로 낮추면서도 적은 돈으로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이 기술의 홍보 포인트였습니다.
직접 봐보니, 초반 30분은 꽤 경쾌합니다. 작업치료사 폴 사프라넥 부부가 경제적 벽에 막혀 결국 다운사이징을 결심하는 과정은 현실감 있게 그려집니다. 문제는 폴 혼자만 작아지고 아내 오드리는 시술 직전 도망쳐버린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인생 역전을 노린 계획이 한 번의 전화통화로 완전히 무너지는 이 장면, 저는 여기서 웃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판단을 못 했습니다.
레저랜드의 이면, 크기만 줄었을 뿐
폴이 이사한 소인 전용 커뮤니티 레저랜드는 언뜻 보면 동화 속 미니어처 낙원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그 담장 바깥이었습니다. 레저랜드 외곽에는 이민자와 저임금 노동자들이 좁은 방에 몰려 살며 부유한 소인들의 집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출신 녹 란(응옥 란 트란)이 대표적입니다. 그녀는 원래 반정부 활동을 하다 당국에 의해 강제로 다운사이징된 뒤 미국으로 넘어온 인물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사회적 불평등(social inequality) 개념을 본격적으로 꺼냅니다. 사회적 불평등이란 소득, 권력, 자원 접근성에서 집단 간에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격차를 의미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세상을 줄여봐야 안에 든 구조는 그대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운사이징 기술 자체가 환경 해법처럼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계층 사회를 그대로 복제한 것에 불과하다는 영화의 시선은 꽤 날카롭습니다.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두고는 실제로도 다양한 국제 보고서가 경고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6차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추세로는 21세기 안에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C를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IPCC). 영화 속 북극 메탄 방출로 인한 환경 붕괴 시나리오가 단순한 SF 설정만은 아닌 셈입니다.
폴의 선택으로 읽는 메시지
후반부에 폴은 요르겐 박사가 노르웨이 산속에 건설한 지하 식민지, 즉 인류 보존을 위한 거대한 벙커 공동체 앞에 섭니다. 여기서 지하 식민지는 아포칼립스 내러티브(apocalypse narrative)의 전형적인 장치로 사용됩니다. 아포칼립스 내러티브란 문명 붕괴나 인류 멸종 위기를 다루는 이야기 구조를 뜻하며, SF 장르에서 흔히 '선택받은 소수만 살아남는다'는 설정으로 등장합니다. 폴은 인류의 씨앗이 되겠다는 거대한 대의에 참여하려 금고 문 안으로 들어서지만, 결국 문이 닫히기 직전 뛰쳐나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결말은 두 가지 반응을 만들어냅니다. "잘 선택했다"는 쪽과 "너무 무책임한 마무리 아니냐"는 쪽입니다. 저는 솔직히 둘 다 느꼈습니다. 녹 란의 말, 지금 당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게 더 중요하다는 그 한마디가 폴의 마음을 돌렸고, 그 순간은 꽤 울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 멸종이라는 거대한 위기를 설정해 놓고 결말을 빈민 구역에서 음식 나누기로 회수하는 건, 이야기의 스케일을 너무 급격하게 축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폴이 변해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흐름이 보입니다.
- 처음: 더 큰 집, 더 두터운 통장 잔고라는 물질적 목표로 다운사이징 결심
- 중반: 아내의 이탈과 공허한 호화 아파트에서 기대했던 행복의 부재를 경험
- 후반: 녹 란을 따라 빈민 구역을 오가며 타인의 삶에 관여하기 시작
- 결말: 거창한 대의 대신 눈앞의 공동체와 함께 남는 선택
이 흐름 자체는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다만 각 단계 사이의 서사적 축적이 충분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욕망의 다운사이징, 이 영화가 남긴 질문
영화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면 아쉬운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녹 란의 서사입니다. 그녀는 강제로 신체가 훼손된 채 이국 땅에 내던져진 인물인데, 영화 안에서 그 고통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습니다. 녹 란의 이야기는 폴의 성장을 위한 배경 역할에 머물고, 그 자체로 완결되지 못합니다. 이민자와 장애인 캐릭터가 주인공의 각성 도구로 소비되는 방식은, 지금 다시 보면 영화가 스스로 비판하는 불평등 구조를 서사 안에서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영화 비평 용어로 말하자면 이른바 '매지컬 마이너리티(magical minority)' 클리셰에 가깝습니다. 매지컬 마이너리티란 소수집단 캐릭터가 자신의 서사 없이 주인공의 성장을 돕는 기능적 존재로만 그려지는 패턴을 말합니다. 녹 란이 딱 그 자리에 놓여 있다는 점은, 영화의 메시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지나쳐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은 유효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국내 SF 영화 관람 통계를 보면, 국내 관객이 SF 장르에서 단순한 볼거리보다 사회적 메시지를 기대하는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다운사이징은 그 기대에 반쯤은 부응하고, 반쯤은 미달한 영화입니다.
진짜 다운사이징은 몸이 아니라 욕망과 삶의 허세를 줄이는 일이라는 메시지, 이것 하나만큼은 제 안에 꽤 오래 남았습니다.
관람을 고민 중이라면, SF의 화려한 설정보다 인간적인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께 더 맞는 영화입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 차이가 크니 그 점만 알고 들어가면, 중간에 방향을 잃는 느낌 없이 끝까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저는 두 번 볼 마음은 없지만, 한 번쯤 들여다볼 가치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