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한국 상업 영화에서 퀴어 서사가 이 정도로 전면에 등장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았습니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극장에 들어갔는데, 보고 나와서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재희와 흥수라는 두 인물이 13년을 함께 살아낸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퀴어 로맨스가 아닌 이유
〈대도시의 사랑법〉은 분명 퀴어 서사(Queer Narrative)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퀴어 서사란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퀴어 로맨스, 즉 동성 커플의 연애 이야기로 소비되기를 거부합니다.
흥수는 게이 남성이고, 재희는 이성애자 여성입니다.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서 가장 깊은 사랑의 형태로 그려지는 건 이 둘 사이의 관계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 구조가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연애가 아닌데 왜 이게 사랑 영화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약점과 비밀을 가장 먼저 알게 된 두 사람이, 그 앎을 무기로 쓰지 않기로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사랑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상대가 상대인 채로 있어도 괜찮은 곳을 만들어 주는 것"에 가깝습니다.
원작인 박상영 작가의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39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30대 게이 남성의 정체성과 사랑을 현실적 톤으로 담아낸 퀴어 문학의 대표작입니다. 영화는 그중 단편 〈재희〉를 기반으로 각색했는데, 소설이 가진 내밀한 시선을 상업 영화라는 포맷 안에서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아웃팅 장면이 불편했던 이유, 그리고 그게 맞는 이유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걸린 장면은 재희가 흥수를 아웃팅(Outing)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웃팅이란 당사자의 동의 없이 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제3자에게 공개하는 행위를 말하며, 이는 당사자에게 심각한 심리적·사회적 피해를 줄 수 있는 인권 침해입니다.
재희는 남자친구 지석과 충돌하는 순간, 궁지에 몰려 "얘 게이야!"라고 소리칩니다. 흥수를 해명의 도구로 써버린 겁니다. 제가 그 장면에서 숨이 막혔던 건, 재희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재희는 흥수를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이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흥수의 정체성을 방패로 썼습니다.
저는 제 삶에서 비슷한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누군가의 비밀을 흘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배신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용서받을 수 있는 실수로만 처리하지 않습니다. 흥수는 떠나고, 재희는 혼자 남습니다. 그 공백이 관객에게 실제로 무게감 있게 전달되는 건, 연출이 이 사건을 해프닝으로 축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말의 빨간 운동화와 열린 결말이 말하는 것
영화의 엔딩 이미지는 꽤 오래 잔상으로 남았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재희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발에는 빨간 컨버스를 신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흥수가 있고, 흥수는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부릅니다.
이 장면은 소위 열린 결말(Open Ending)의 형태를 취합니다. 열린 결말이란 인물들의 이후 삶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관객이 각자의 해석을 가져갈 수 있도록 서사를 열어두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재희가 결혼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흥수가 커밍아웃에 성공하는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엔딩이 처음에 약간 아쉬웠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두 사람의 화해와 재회까지 꽤 긴 감정선을 쌓아왔는데, 결말이 그것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고 열어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빨간 운동화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흥수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 영화의 결론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연애 성공보다 더 단단한 해피엔딩으로 읽히는 구조입니다.
국내 성소수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상당수가 가족이나 직장에서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성소수자연구회). 흥수가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시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는 장면이 작은 변화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영화의 한계, 그리고 그 한계가 의미하는 것
이 영화에 대해 한 가지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안전한 감동"을 택한 작품입니다. 이건 비판이기도 하고, 동시에 현실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재희의 아웃팅 행위나 흥수의 지속적인 자기 은폐가 가진 폭력성은, 영화 후반부의 화해 서사 안에서 상당 부분 수습됩니다. 두 사람 모두 "상처 입은 좋은 사람"으로 귀결되는 구조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불편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관객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영화 속에서 아쉬웠던 서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웃팅의 폭력성이 충분히 비판받지 않고 개인 간 화해로 수습됨
- 계급·노동 불안(낡은 집, 야근, 불안정한 직장)이 미장센으로만 소비됨
-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개인의 용기 서사로 치환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가 지금 한국 상업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퀴어·여성 서사의 최대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한국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퀴어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상업 영화가 100만 관객을 넘긴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 맥락에서 이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입니다.
다만 다음 작품에서는, 관객이 불편해도 괜찮을 만큼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으면 합니다. 안전한 감동이 아니라, 덜 정제된 분노와 모순 쪽으로 조금 더 밀고 나가는 쪽으로요.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싶다면 재희와 흥수의 관계를 "우정 이상 연애 이하"로 분류하려는 시도를 잠깐 내려놓고 보시길 권합니다. 그 범주 바깥에서, 이 영화는 훨씬 더 넓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지금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제대로 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오래된 감정이었습니다.
참고: 대도시의 사랑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