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3년 서아프리카, 여성으로만 구성된 전사 부대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영화 「더 우먼 킹」은 그 실화를 바탕으로, 전쟁·노예제·모녀 관계를 한 화면 안에 압축해 넣은 작품입니다. 저는 처음엔 액션 영화로 틀었다가, 나니스카와 나위의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보게 됐습니다. 단순히 강한 여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모녀 서사 — 폭력의 흔적이 연결을 만들 때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은 전투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나니스카가 나위의 어깨에서 상어 이빨 흔적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흔적은 트라우마(trauma), 즉 반복적인 성폭력과 강제 이별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의 기억을 몸에 새긴 표식이었습니다. 여기서 트라우마란 단순한 심리적 충격이 아니라, 몸과 기억 모두에 새겨져 일상적인 관계 형성 자체를 방해하는 깊은 상처를 의미합니다. 나니스카는 그 흔적 때문에 나위를 곁에 두고도 딸이라고 말하지 못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을 쌓아올렸습니다.
나니스카의 과거는 오요 제국의 장군 오바에게 포로로 잡혀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태어난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었던 그녀는, 아이의 어깨에 상어 이빨을 박아 입양을 보내고 아고지에(Agojie) 부대의 장군으로 살아왔습니다. 아고지에란 실제 다호메이 왕국에 존재했던 왕실 소속 여성 전사 부대로, 철저한 훈련과 독신 서약을 바탕으로 운영된 전투 집단입니다. 나니스카에게 이 부대는 단순한 직책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폭력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삶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결말에서 두 사람이 포옹하는 장면을 보며 제가 직접 느낀 건, 그 순간이 영화적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나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도 한참 동안 멀찍이 서 있었습니다. 다가가는 것도 상처였고, 외면하는 것도 상처였을 겁니다. 그 망설임 끝에 먼저 걸음을 뗀 쪽은 나위였고, 나니스카는 자신이 내린 선택을 사과하며 딸을 끌어안았습니다. 이 장면은 모녀 관계를 혈연이 아니라, 폭력의 흔적을 공유한 두 사람 사이의 의식적인 연결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기존 전쟁 영화와 확실히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여성주의 영화 비평에서는 이처럼 어머니의 트라우마가 딸에게 계승되면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세대 간 치유 서사'라고 부릅니다. 세대 간 치유 서사란, 한 세대가 겪은 폭력과 침묵이 다음 세대에서 비로소 언어화되고 관계로 회복되는 이야기 구조를 가리킵니다. 나위가 아고지에 전사로서 오바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전투는, 단순히 적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의 상처를 딸이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장면으로 읽혔습니다.
- 나니스카의 상어 이빨 흔적 — 폭력의 기억을 몸에 새긴 표식이자 모녀를 연결하는 매개
- 아고지에 부대 — 실제 다호메이 왕국의 왕실 여성 전사 집단. 나니스카에게는 생존 방식이기도 했음
- 결말의 포옹 — 해피엔딩이 아닌, 의식적인 연결의 선택. 먼저 걸음을 뗀 쪽은 딸인 나위
- 세대 간 치유 서사 — 어머니의 침묵이 딸의 언어와 행동으로 전환되는 이야기 구조
역사 논쟁 — 영화가 덜어낸 불편한 사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호메이 왕국의 실제 역사를 찾아봤을 때, 화면에서 받은 감동과 꽤 다른 그림이 펼쳐졌습니다. 영화는 다호메이를 노예제와 제국주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왕국으로 그리지만, 실제로 다호메이는 서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주요 공급자 중 하나였습니다. 이웃 부족을 습격해 포로를 잡아 유럽 노예 상인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왕국의 재정을 유지했고, 아고지에 부대도 그 과정에 동원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출처: Wikipedia, The Woman King).
이 지점에서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오요 제국과 포르투갈 노예 상인이 명확한 악으로 기능하고, 다호메이는 피해자이자 저항자로 읽힙니다. 그런데 나니스카가 항구를 불태우는 결말 이후에도, 다호메이 왕국이 노예를 공급하던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영화 안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습니다. 게조 왕이 노예 무역을 팜유 무역으로 전환하겠다는 대사가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이어지지 않은 역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 개연성(historical plausibil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역사적 개연성이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 역사적 맥락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조응하는지를 따지는 기준입니다. 영화 「더 우먼 킹」은 이 기준에서 의도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다호메이의 노예 무역 참여를 영화 안에서 언급은 하되, 그것을 서사의 중심 갈등으로 끌어오지 않는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과 일부 비평가들이 영화 개봉 당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출처: 위키백과, 더 우먼 킹).
저는 이 논쟁을 영화의 결함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할리우드가 비서구권 역사를 가져올 때 불편한 사실을 어디까지 덜어내는가는 오래된 문제이고, 「더 우먼 킹」도 그 안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그 선택이 의도적이라는 걸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다릅니다. 이 영화가 강렬한 여성 서사를 전달하는 동시에, 관객이 스스로 역사를 찾아보게 만드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됐고, 그 과정이 오히려 영화를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우먼 킹은 실화 기반 영화인가요?
A. 1820년대 서아프리카 다호메이 왕국의 실제 여성 전사 부대 아고지에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단, 나니스카·나위 등 주요 인물과 구체적인 사건은 픽션으로 구성됐습니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창작 드라마로 보시면 됩니다.
Q. 나니스카와 나위가 모녀 관계인 게 영화 중반에 밝혀지나요?
A. 영화 후반부에 나위의 어깨에서 상어 이빨 흔적을 나니스카가 발견하면서 밝혀집니다. 나니스카가 오바에게 성폭력을 당해 낳은 아이가 나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으로, 이 장면 이후 서사의 감정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Q. 역사학자들이 이 영화를 비판한 이유가 뭔가요?
A. 실제 다호메이 왕국이 오랫동안 이웃 부족을 습격해 노예를 공급했던 국가임에도, 영화는 다호메이를 노예제에 맞서는 정의로운 세력으로 묘사한다는 점이 주된 비판입니다. 역사적 맥락이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지적입니다.
Q. 결말에서 나니스카는 왜 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항구로 갔나요?
A. 게조 왕이 여성 왕 즉위를 제안했지만, 나니스카는 포로가 된 나위와 아고지에 전사들을 먼저 구하러 항구로 향했습니다. 이 선택은 권력보다 공동체와 관계에 대한 책임을 우선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힙니다.
결론
「더 우먼 킹」은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은 영화였습니다. 액션의 밀도도 충분했지만, 진짜 여운은 나니스카와 나위가 서로를 인정하는 조용한 포옹 장면에서 왔습니다. 폭력의 흔적을 공유한 두 세대가 그것을 부끄러운 비밀로 묻지 않고, 관계로 다시 연결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다호메이 왕국의 실제 역사를 알고 나면, 영화가 어떤 불편한 사실을 덜어냈는지도 보입니다. 그게 이 영화를 나쁘게 만들지는 않지만, 더 입체적으로 보게 해줍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실제 아고지에 부대와 다호메이의 역사를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담은 것과 담지 않은 것 사이에서 오히려 더 깊은 생각이 시작됩니다.
참고: 더 우먼 킹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