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시작하고 15분 동안 단 한 마디 대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158분이 끝났을 때 그 답은 생각보다 훨씬 불편한 곳에 있었습니다.
탐욕과 자본주의, 그 피 묻은 탄생사
혹시 어떤 사람이 성공할수록 점점 더 외로워지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석유 붐이 일어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석유 사업가 대니얼 플레인뷰의 성공과 파멸을 따라갑니다.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은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Oil!』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소설이 노동자·노조·사회주의 운동까지 폭넓게 다뤘다면, 영화는 오직 한 인간의 내면과 그 붕괴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시추탑이 불타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검은 석유가 하늘까지 치솟고, 현장이 지옥처럼 타오르는데, 대니얼은 아들 H.W.가 폭발 사고로 청력을 잃는 그 순간에도 끝까지 우물 앞에 서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가족을 위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그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석유를 향해 있었습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인물의 본질이 다 설명된다고 느꼈습니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서사 드라마(epic drama)입니다. 서사 드라마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한 시대나 사회 전체의 흐름을 한 인물의 생애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르를 말합니다. 대니얼 플레인뷰라는 인물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미국식 자본주의(American capitalism)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미국식 자본주의란 경쟁, 축적, 개인의 성공을 최고 가치로 삼는 경제 체제로, 이 영화는 그 이면에 깔린 폭력과 착취를 극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실제로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인물 중 하나로 석유 사업가 에드워드 L. 도허니(Edward L. Doheny)가 자주 언급됩니다. 도허니는 LA 도심 인근에서 직접 유정을 굴착해 도시 석유 붐을 촉발한 인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치 부패 사건 중 하나인 티폿 돔 스캔들(Teapot Dome Scandal)에 연루되기도 했습니다. 티폿 돔 스캔들이란 연방 정부의 석유 비축지를 비밀리에 민간 업자에게 임대하고 뇌물을 받은 사건으로, 당시 대통령 행정부를 뒤흔든 대형 게이트였습니다. 영화가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정서를 이렇게 실감 나게 전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맥락이 촘촘하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출처: 위키피디아 - 티폿 돔 스캔들).
대니얼이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수록 주변 사람은 하나둘 사라집니다. 이복동생이라고 속인 헨리는 살해당하고, 아들 H.W.는 "너는 내가 기회 때문에 데려온 고아일 뿐"이라는 말을 들으며 떠납니다. 부와 권력이 커질수록 인간관계는 모두 소모품이 되는 이 과정을 보면서, 성공이란 과연 무엇인지 자꾸 질문하게 됩니다.
대니얼이 인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던 H.W.와의 관계도 끝내 도구와 희생양의 관계로 마무리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잔인하다고 느꼈는데, 영화가 관객에게 "그래도 H.W.만큼은 진짜 가족이었을 거야"라는 희망을 오랫동안 품게 해놓고, 결국 그마저 철저히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핵심 포인트:
- 서사 드라마 장르로서 한 시대 전체의 폭력성을 한 인물에 압축
- 에드워드 도허니 등 실제 석유 재벌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복합 캐릭터
- 부와 권력이 커질수록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반(反) 성공 서사
- 티폿 돔 스캔들 등 실제 역사적 맥락이 영화의 정서적 배경을 형성
종교 대립과 고립, 두 괴물의 거울
그렇다면 일라이 선데이는 어떤 존재일까요? 저는 처음에 대니얼과 일라이를 선과 악의 구도로 읽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두 사람이 사실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상(mirror image)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울상이란 두 존재가 겉보기에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구조를 공유하고 있음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일라이는 신앙을 외치지만 헌금과 권력을 탐하고, 대니얼은 종교를 경멸하지만 필요할 때는 세례라는 굴욕도 감수합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타인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교회 세례 장면은 제가 본 영화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불편한 장면이었습니다. 대니얼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는 나쁜 아버지입니다"라고 외치며 뺨을 맞는 장면인데, 이것이 신앙 때문이 아니라 오직 송유관 설치권 확보를 위한 계산된 굴욕이라는 사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설교자(charismatic preacher)로 군림하는 일라이가 상대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그 표정과, 그것을 받아내면서도 눈빛은 절대 죽지 않는 대니얼의 표정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던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설교자란 뛰어난 언변과 감정적 호소력으로 대중을 이끄는 종교 지도자를 가리키며, 영화는 이 역할이 어떻게 비즈니스와 결탁하는지를 거의 풍자 수준으로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볼링장 장면에 대해서는 일부러 글을 쓰면서도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몰락한 일라이가 대니얼을 찾아와 밴디 땅의 시추를 제안하고, 대니얼은 이미 인접 유정에서 그 땅의 석유를 모두 빨아먹었다고 밝힙니다. "나는 너의 밀크셰이크를 마셨다(I drink your milkshake)"라는 대사가 여기서 나옵니다. 밀크셰이크 비유란 빨대를 꽂아 옆 잔의 음료까지 빨아들이는 이미지로, 한 유전에서 인접한 땅의 석유까지 끌어다 쓸 수 있는 시추 방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가 너무 직관적이면서도 잔인해서, 저는 처음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결국 대니얼은 일라이를 볼링 핀으로 살해하고, 집 하인이 내려오자 지친 목소리로 "이제 끝났어(I'm finished)"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가 단순히 살인이 끝났다는 뜻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이 끝났다는 고백인지, 영화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모호함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연출 방식에 대해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분명히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심리적 서술이나 설명이 거의 없고, 인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극단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감정이입할 여지가 좁습니다. 저는 그 선택이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더 인간적인 균열이 섬세하게 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종교와 자본의 대립을 그리는 방식도, 지나치게 극단화된 나머지 종교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역할로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영화는 작품상과 감독상 등 여러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21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걸작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 동시에 끝까지 불편하고, 보고 나서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성공과 야망 뒤에 무엇이 남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이 158분이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첫 15분의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이 영화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가 될 것입니다.
참고: 데어 윌 비 블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