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윅 스핀오프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영화가 과연 독립적인 서사를 가질 수 있을까요? 2025년 8월 국내 개봉한 「발레리나」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의문이었습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 주연의 이 작품은 존 윅 유니버스의 첫 번째 정식 스핀오프로, 챕터 3과 4 사이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수극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막상 스크린에서 이브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걱정이 꽤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존 윅 세계관 속 루스카 로마의 정체
발레리나의 배경이 되는 루스카 로마(Ruska Roma)는 존 윅 3: 파라벨룸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암살자 조직입니다. 여기서 루스카 로마란 러시아계 범죄 조직으로, 발레 학교를 위장막 삼아 어린 시절부터 암살자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존 윅이 뉴욕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디렉터(안젤리카 휴스턴)에게 도움을 청했던 곳이 바로 이 조직이었죠.
이브는 이 조직에서 발레리나로 훈련받은 킬러입니다. 발레 동작과 암살 기술을 결합한 설정 자체는 참신했고, 실제로 액션 신에서 그 조합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이브가 좁은 복도에서 여러 명을 상대하는 시퀀스였는데, 발레의 회전 동작이 공격과 회피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으로 연출되더군요.
다만 루스카 로마라는 조직의 내부 구조나 위계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존 윅 시리즈에서 콘티넨탈 호텔(Continental Hotel)이나 최고회의(High Table) 같은 세계관 요소들이 깊이 있게 다뤄진 것과 비교하면, 루스카 로마는 배경 정도로만 소비된 느낌입니다. 여기서 콘티넨탈 호텔이란 암살자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중립 구역이며, 최고회의는 전 세계 범죄 조직을 총괄하는 최상위 권력 기구를 뜻합니다(출처: 존 윅 위키).
복수극의 구조와 이브의 감정선
영화는 이브가 아버지의 죽음을 추적하며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스토리 구조 자체는 단순합니다. 아버지의 죽음 → 원인 추적 → 적 제거라는 직선적인 플롯이죠. 제가 관람했을 때 중반부터는 "이제 또 누구랑 싸우겠구나" 하는 예측이 가능해지더군요.
문제는 이브의 감정선이 액션에 묻힌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분노라는 동기는 분명히 공감 가능한 출발점인데, 그 감정이 화면 위에서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다음 액션 시퀀스로 넘어갑니다. 싸우는 이유보다 싸우는 장면이 더 많다 보니, 이브가 무언가를 잃었다는 감각보다 그냥 잘 싸우는 사람이라는 인상만 남습니다.
존 윅이 강아지 한 마리로 관객을 울리고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존 윅의 첫 작품에서 강아지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죽은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자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작은 생명이 죽었을 때 관객도 함께 분노할 수 있었죠. 반면 발레리나에서 이브의 아버지는 인물로서 충분히 그려지지 않아, 그의 죽음이 주는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에서 복수극(revenge narrative)이란 주인공이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당한 피해에 대해 직접 응징을 실행하는 서사 구조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누군가 내 소중한 것을 빼앗았으니 내가 직접 갚겠다"는 이야기죠. 발레리나는 이 전형적인 복수극 구조를 따르지만, 감정적 밀도에서는 원작 존 윅에 미치지 못합니다.
키아누 리브스 출연과 팬서비스의 양면성
영화 중반,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극장 안 반응이 확실히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팬 입장에서 반가운 건 사실이지만, 그 장면이 이브의 이야기를 강화하기보다 존 윅 팬서비스에 더 가깝게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루스카 로마의 명을 받은 존 윅이 이브를 가로막는 설정 자체는 세계관 연결로서는 자연스럽지만, 결과적으로 이브의 독립성을 희석시키는 역설도 생깁니다.
스핀오프가 원작에 기대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기댐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면 새 캐릭터의 무게감이 가벼워집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존 윅이라는 브랜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의 존재감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의 힘은 원작에 비해 얇았습니다.
영화 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존 윅 챕터 3과 4 사이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며, 감독 렌 와이즈먼과 존 윅 시리즈의 핵심 인물 채드 스타헬스키가 추가 액션 연출에 참여했습니다(출처: IMDb). 제작진의 노력은 분명히 느껴졌지만, 그게 이브만의 독자적인 이야기로 완전히 승화되지는 못했다는 게 솔직한 평가입니다.
액션 연출과 발레리나만의 특징
이브의 액션은 존 윅의 묵직한 건파이팅(gun-fu)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여기서 건파이팅이란 총기 사격과 무술 동작을 결합한 액션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존 윅 시리즈가 권총과 근접 격투를 동시에 사용하는 실전적인 움직임을 강조했다면, 발레리나는 발레 동작이 섞인 유연하고 화려한 움직임을 특징으로 합니다.
처음엔 "과하게 꾸민 거 아닌가?" 싶었는데, 보다 보니 오히려 그게 이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진 사람인지를 몸으로 설명해 주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루스카 로마에서 발레리나로 훈련받은 사람이 살인 기술을 익혔다는 설정이, 액션에서 그대로 표현되는 겁니다.
영화 속에서 이브가 사용하는 무기 종류도 다양합니다. 주요 무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권총과 소총: 기본적인 총기류로, 근거리와 중거리 전투에 사용
- 칼과 단검: 근접 전에서 발레 동작과 결합되어 치명적인 공격 수단으로 활용
- 화염방사기: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압도적인 무기
솔직히 화염방사기 장면은 시각적으로 강렬했지만, 그게 이브의 캐릭터와 얼마나 어울리는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제가 극장에서 봤을 때 그 장면이 나오자마자 옆 사람이 "이건 좀 오버 아니야?"라고 속삭이더군요.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발레리나의 액션 연출은 존 윅 시리즈가 쌓아온 실전적 액션 스타일에 발레라는 새로운 요소를 더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시도가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발레 동작이 액션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순간도 있지만, 가끔은 액션을 위한 액션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으니까요.
발레리나는 존 윅 세계관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의 존재감과 액션 연출은 분명히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스핀오프 그 이상이 되려면, 후속작에서 이브만의 이야기가 더 단단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복수는 통쾌하지만 그게 곧 치유는 아니라는 메시지는 좋았으나,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감정선이 더 깊이 있게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존 윅 시리즈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하지만, 이 영화 하나만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참고: 발레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