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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 2017 리뷰 (리메이크, 찰리 허넘, 라미 말렉)

by 영화는 영화다 2026. 4. 22.

영화 빠삐용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리메이크작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1973년 원작이 있는데 굳이?"라는 생각이 앞섰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든 탈옥 드라마였고, 동시에 "그래서 이걸 왜 다시 만들었나"라는 질문도 더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2017년 「빠삐용」,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드는 영화입니다.

리메이크가 먼저라면 이것부터 확인하세요

2017년판 「빠삐용」은 1930년대 프랑스령 기아나, 그러니까 남미에 실제로 존재했던 식민지 유형지를 배경으로 합니다. 실존 인물 앙리 샤리에르의 자전적 탈옥기를 원작으로 하며, 그가 가슴에 새긴 나비 문신 때문에 붙은 별명이 바로 '빠삐용(Papillon)'입니다. 프랑스어로 나비를 뜻하는 단어인데, 저는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왜 나비인가 한참 생각했습니다.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붙잡아도 손안에 가둘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이 가장 헷갈리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이 작품이 리메이크라는 사실 자체입니다. 원작 소설 → 1973년 영화 → 2017년 리메이크로 이어지는 계보를 먼저 알고 보면 훨씬 몰입이 쉽습니다. 2017년판을 먼저 접하는 분들을 위해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인공 빠삐용(찰리 허넘):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금고털이범
  • 조력자 드가(라미 말렉): 위조지폐 혐의로 수감된 부유한 중산층 출신 죄수
  • 배경: 프랑스령 기아나의 식민지 형무소, 최종적으로 '악마의 섬'

두 사람이 이해관계로 만나 서로를 보호하고, 결국 목숨을 건 탈출을 반복하는 이야기입니다. 구조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 인간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유를 원하는지를 집어넣는 방식이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찰리 허넘이 보여준 신체 서사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충격받은 건 찰리 허넘의 몸이었습니다. 역할을 위해 약 18kg를 감량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영화 중반부터 후반으로 갈수록 뼈가 드러나는 느낌의 얼굴과 손목이 화면 안에 그냥 있습니다. 따로 강조하거나 클로즈업을 남발하지 않는데도 보는 사람이 불편할 만큼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에서 이런 신체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식을 '피지컬 내러티브(Physical Narrative)'라고 부릅니다. 피지컬 내러티브란 배우의 신체 그 자체가 대사나 편집 없이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 기법으로, 관객이 시간의 무게를 눈으로 직접 체감하게 만듭니다. 맥퀸이 73년판에서 말수 적고 냉정한 카리스마로 이 역할을 해냈다면, 허넘은 몸으로 먼저 말하는 방식을 택한 셈입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신체 변화가 설득력 있는 것과 독방에서 버티는 시간이 진짜로 느껴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2년, 5년이라는 수감 기간이 자막과 몸의 변화로 처리되고 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리는데,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가슴이 쪼그라드는 감각까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독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압박, 그 안에서 인간성이 서서히 부식되는 과정을 영화가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라미 말렉이 바꾼 드가의 무게중심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라미 말렉이 연기한 드가가 더 인상에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돈으로 안전을 사려는 겁쟁이 위조범처럼 보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캐릭터가 이야기의 감정적 중심을 조용히 가져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위조지폐범이라는 설정에서도 드가의 캐릭터는 기술적 개념과 연결됩니다. 위조지폐 제작은 단순 범죄가 아니라 인쇄, 용지, 잉크, 위변조 방지 기술 등을 우회하는 정교한 기술범죄입니다. 여기서 위조(Counterfeiting)란 국가 화폐 발행 권한을 위조·복제하는 행위로, 경제 시스템 자체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로 분류됩니다. 드가가 단순한 도둑이 아닌, 시스템에 맞섰다가 그 시스템에 짓밟힌 인물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신경질적이고 중년의 냄새가 나는 드가를 보여줬다면, 라미 말렉의 드가는 더 젊고, 더 떨리고, 어딘가 선량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특유의 크고 표정이 많은 눈, 머뭇거리는 말투가 신경증적인 불안을 잘 살리면서도, 빠삐용에게 기대는 연약함이 더 도드라집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드가가 내리는 선택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를 "우정 영화"로 기억하는 관객이 적지 않은 건 대부분 드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메이크의 한계, 그리고 원작이 고전인 이유

2017년판이 원작과 비교해 자주 지적받는 부분은 서사의 밀도입니다. 영화 비평에서 '서사 밀도(Narrative Density)'란 같은 러닝타임 안에 사건, 감정, 캐릭터의 변화가 얼마나 촘촘하게 채워져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2017년판은 현대 관객의 속도 감각에 맞게 편집 리듬을 빠르게 가져간 대신, 각 에피소드의 무게가 얕아졌다는 비판을 받습니다(출처: 로튼 토마토).

저도 그 지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악마의 섬(Devil's Island) 절벽에서 바다로 몸을 던지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화면도 음향도 잘 설계되어 있고, 실제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동이 온전히 이 영화에서 쌓인 것인지, 원작 서사 자체의 힘인지를 분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영화가 감정을 빌려온 것인지, 만들어낸 것인지의 차이라고 할까요.

영화의 설정 배경이 된 프랑스령 기아나의 형무소 제도는 실제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운영된 식민지 유형 제도로, 이 제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프랑스 국립기록원을 포함한 여러 기관에 남아 있습니다(출처: 프랑스 국립기록원). 이 제도가 가진 구조적 폭력,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소비했는지를 더 깊이 파고들 여지가 있었는데, 영화는 그 방향보다는 두 사람의 우정과 생존 본능 쪽을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은 확보했지만, "왜 지금 이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에는 선명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1973년 원작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만들어낸 그 무게감은 기술적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갖고 있고, 2017년판은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방식을 찾으려 했지만 완전히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2017년판이 나쁜 영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본다면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탄탄한 탈옥 드라마입니다. 1973년판을 먼저 봤다면 아쉬움이 남겠지만, 순서를 반대로 한다면 오히려 2017년판이 진입장벽이 낮은 좋은 입문작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먼저 보더라도, 결국 두 영화를 모두 보고 싶어진다는 게 이 시리즈의 힘입니다.


참고: 빠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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