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을 집행하러 간 FBI 요원이 오히려 법 밖의 작전에 도구로 쓰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는 정의라는 명분 아래 작동하는 폭력의 구조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불쾌한 긴장감이 끝까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불쾌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핵심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법과 폭력 — 케이트가 들어간 세계
FBI 요원 케이트 메이서는 애리조나 주택을 급습하다 벽 속에 숨겨진 수십 구의 시신과 폭발물을 발견합니다. 이 장면 하나가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합니다. 카르텔의 폭력은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고, 케이트가 알던 '범죄 수사'의 규칙은 그 앞에서 무력합니다.
케이트는 CIA 요원 맷 그레이버와 정체불명의 컨설턴트 알레한드로가 이끄는 비밀 작전에 합류하게 됩니다. 여기서 '비밀 작전'이란 공식적인 법적 근거나 의회 승인 없이 진행되는 준군사적 작전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법 집행 기관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케이트는 작전에 참여하면서도 목적과 근거를 제대로 설명받지 못합니다.
멕시코 후아레즈로 향하는 국경 통과 장면은 제가 직접 겪은 것처럼 느껴질 만큼 긴장감이 물리적으로 전달됐습니다. 차량 행렬, 서로를 경계하는 눈빛, 그 속에서 터지는 총격.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묵직하고 느린 연출이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케이트가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곳에 들어왔다는 걸 실감했을 것이라고,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영화는 '준법적 집행(rule of law)'이라는 개념을 의도적으로 흔듭니다. 여기서 준법적 집행이란 국가기관이 법이 정한 절차와 권한 안에서만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케이트는 이 원칙을 믿는 인물이지만, 맷과 알레한드로의 세계에서 그 원칙은 오히려 작전의 걸림돌이 됩니다.
- 케이트: 법적 절차를 신뢰하는 FBI 요원. 작전의 실제 목적을 모른 채 합류
- 맷 그레이버: CIA 요원. 카르텔 세력 재편을 목표로 비공개 작전을 주도
- 알레한드로: 정체불명의 컨설턴트. 아내와 딸을 카르텔에 잃은 개인적 복수자
복수의 구조 — 알레한드로는 정의로운가
알레한드로는 영화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강렬한 인물입니다. 말이 적고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오래된 분노와 상실이 느껴집니다. 저는 처음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적이 드러났을 때, 단순히 공감하기보다는 불편함이 먼저 왔습니다.
알레한드로는 소노라 카르텔의 보스 파우스토 알라르콘에게 아내와 딸을 잃었습니다. CIA의 작전은 알라르콘을 제거해 경쟁 카르텔이 세력을 차지하도록 판을 재편하는 것이었고, 알레한드로는 그 작전을 개인 복수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세력 재편(cartel power rebalancing)'이란 특정 조직을 제거해 다른 조직이 그 빈자리를 채우도록 유도하는 전략입니다. 쉽게 말해 악당을 없애는 게 아니라, 더 다루기 쉬운 악당으로 교체하는 것입니다.
알레한드로가 알라르콘의 저택에서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식탁에서 살해하고, 마지막으로 알라르콘 본인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은 제가 직접 봤을 때 통쾌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차갑고 허무했습니다. 복수는 완성됐지만 죽은 가족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고, 그가 선택한 방식도 카르텔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알레한드로의 복수를 영웅적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드니 빌뇌브의 연출이 빛납니다. 출처: IMDb — Sicario(2015)에 따르면 이 영화는 2015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는 그해 가장 강렬한 퍼포먼스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저도 이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가 말없이 앉아 있는 장면에서도 무게감이 화면을 눌렀습니다.
정의의 한계 — 보스가 사라져도 총성은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이들이 축구를 하다가 총성 때문에 경기를 멈추는 모습입니다. 카르텔 보스 한 명이 제거된 뒤에도 국경 지역의 폭력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제가 기대한 카타르시스 같은 건 처음부터 설계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CIA의 작전이 향한 방향은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의 실제 논리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여기서 마약과의 전쟁이란 1970년대 닉슨 행정부 이후 미국이 마약 유통과 조직을 군사적·법집행적 수단으로 척결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뜻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CIA는 카르텔을 없애는 대신 더 통제하기 쉬운 조직으로 권력을 이전시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질서를 재배치하는 것입니다.
케이트가 작전 후 알레한드로에게 총을 겨누고도 쏘지 못하는 장면은,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하게 해석되는 순간입니다. 그 행동이 도덕적 망설임인지, 무력감의 표현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케이트의 역할이 후반부로 갈수록 수동적으로 변하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 수동성 자체가 이 세계에서 원칙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RogerEbert.com — Sicario 리뷰에서도 이 영화를 두고 "도덕적 명확성이 철저히 거부된 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 제가 느낀 불쾌한 긴장감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이 편하게 선악을 나눌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카리오 결말에서 알레한드로는 왜 케이트에게 서명을 강요했나요?
A. 작전의 법적 정당성을 사후에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부터 법 밖에서 진행된 작전이었기 때문에, CIA 입장에서 케이트처럼 원칙을 따르는 인물의 서명이 필요했습니다. 케이트가 총을 겨눠도 알레한드로가 두려워하지 않은 건 이미 케이트가 이 구조 안에서 무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시카리오에서 알레한드로가 알라르콘 가족을 죽인 이유가 뭔가요?
A. 알레한드로는 알라르콘에게 아내와 딸을 잃었습니다. 복수의 방식으로 알라르콘의 가족을 먼저 죽인 것은, 알라르콘이 자신이 가족을 잃는 고통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냉정하게 그려내면서 복수가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Q. 시카리오 마지막 축구 장면은 무슨 의미인가요?
A. 카르텔 운반책 실비오의 아들이 축구를 하다가 총소리에 경기가 멈추는 장면입니다. 보스 한 명이 제거된 뒤에도 국경 지역 아이들의 일상에는 여전히 폭력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의 복수나 기관의 작전이 끝나도 폭력의 환경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가장 담담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Q. 시카리오와 프리즈너스가 같은 감독 작품이라는데, 두 영화의 공통점이 있나요?
A. 드니 빌뇌브 감독의 두 작품 모두 '정의를 위한 폭력'이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섞어 놓는 구조를 다룹니다. 〈프리즈너스〉의 켈러 도버는 딸을 찾기 위해 알렉스를 납치하고 고문하다가 스스로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시카리오〉의 알레한드로는 복수에 성공하지만 폭력의 세계 안에 여전히 머뭅니다. 두 영화 모두 결말이 열려 있거나 허무하게 끝난다는 점도 닮아 있습니다.
결론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카르텔을 소재로 한 범죄 스릴러처럼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정의라는 이름 아래 작동하는 폭력의 구조를 해부하는 영화입니다. 케이트의 원칙은 무력해지고, 알레한드로의 복수는 허무하게 완성되고, 마지막 아이들의 축구 경기는 총성에 멈춥니다. 저는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질수록 제대로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영화를 아직 못 보셨다면, 카타르시스를 기대하지 않고 보시길 권합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다른 작품 〈프리즈너스〉와 함께 보면, '정의를 위한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주제가 두 영화를 관통한다는 걸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 프리즈너스 심층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