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보고 나서 "그래서 악인이 누구야?"라고 물었다면, 이 영화는 아마 처음부터 그 질문을 거부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산골 마을 하라사와에 글램핑장 개발 계획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립니다. 저도 처음에는 단순한 개발 반대 영화겠거니 했는데, 스크린 앞에 앉아 있던 두 시간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상류와 하류: 물길이 곧 권력 구조입니다
영화가 글램핑장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화조 위치 문제였습니다. 연예기획사 '플레이모드'가 제출한 설계도에는 정화조가 마을 식수원 상류에 놓여 있었고, 주민설명회에서 마을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상류에서 하는 일은 반드시 하류에 영향을 준다." 저는 그 장면에서 이게 단지 오수 얘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여기서 상류/하류 구조란 단순한 지형적 위치가 아니라, 누가 결정하고 누가 그 결과를 감당하느냐는 권력의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도시에서 내려온 회사가 '상류'에서 계획을 짜고, 그 땅에서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하류'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게 되는 구조입니다. 영화는 이 구조를 추상적 비유로 놔두지 않고, 타쿠미가 매일 아침 길어 나르는 샘물이라는 아주 물리적인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솔직히 이 장면을 보면서 일본 산골 얘기라는 생각이 잘 안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댐 건설, 골프장 인허가, 리조트 개발 갈등이 반복될 때마다 등장하는 패턴이 여기 있었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EIA) 협의 건수는 매년 수천 건에 달합니다. 환경영향평가란 개발 사업이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예측하고 저감 방안을 검토하는 법정 절차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평가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작동하는지는, 이 영화의 설명회 장면에서 PPT를 들고 내려온 직원들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이 영화에서 글램핑 갈등이 상징하는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상류 소수(도시 자본·회사)가 결정하고, 하류 다수(마을 공동체)가 피해를 입는 구조
- 서류상 기준을 충족해도, 그 기준이 실제 생활과 생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
-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이 실상 정부 보조금 소진을 위한 급조 프로젝트를 가리는 방식
글램핑 갈등: 회유와 공모 사이에서 흔들리는 개인
타카하시라는 인물이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원래 연예인 매니저였다가 회사 지시로 마을 설명회를 맡게 된 이 인물은, 처음에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는 태도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타쿠미와 함께 숲을 돌면서 물길과 사슴 서식지를 배우다 보니, 자신이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단순한 행정 업무가 아니라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회사 본사는 타카하시에게 "적당히 주민들과 소통했다는 증거만 남기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타쿠미에게 글램핑장 상주 관리자 자리를 제안합니다. 여기서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해충돌이란 개인이나 조직이 사적 이익과 공적 의무가 충돌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을 말하는데, 타쿠미에게 일자리를 제안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회유 전략이자 공동체 내부의 이해충돌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수법입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이 구조가 너무 익숙하다는 불편함이었습니다. 개발 사업 반대의 목소리를 '일자리와 이득'으로 흡수하는 방식은 한국에서도 대형 개발 사업 주변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됩니다. 타쿠미가 제안을 완전히 수락하지도, 명확히 거절하지도 못한 채 애매하게 머무는 상태는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타카하시의 존재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명확한 악당"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생계를 위해 회사 지시를 따르는 그를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의 선택이 아무 결과도 낳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지점이 바로 제목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역설이 작동하는 자리입니다.
에코알레고리로서의 한계와 가능성
후반부에 하나가 숲 속에서 실종되는 시퀀스부터 영화는 갑자기 다른 질감으로 미끄러집니다. 저는 그 순간 차분한 개발 갈등극 같던 영화가 인간이 자연에 삼켜지는 공포 영화에 더 가까운 무언가로 변하는 감각을 받았습니다. 총에 맞은 새끼 사슴과 그 곁을 지키는 어미 사슴, 하나를 안고 서 있는 타쿠미의 모습이 겹쳐지는 장면은 이 숲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상처 입고 분노한 어떤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이 결말을 에코알레고리(eco-allegory)로 마무리합니다. 에코알레고리란 자연과 생태를 인간의 도덕적·사회적 문제를 반영하는 알레고리로 사용하는 서사 기법인데, 사슴 가족과 타쿠미 부녀의 겹침,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총소리가 결국 가장 취약한 존재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는 귀결이 그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결말에서 한 가지 불편함이 남았습니다. 글램핑 갈등이 상징적으로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보니,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개발 갈등의 구체적인 정치성이 어느 정도 희석되는 효과가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환경 분쟁이 법제화된 사례들을 보면,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되는 분쟁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환경분쟁조정이란 환경오염이나 자연훼손으로 인한 피해를 둘러싼 분쟁을 행정적 절차로 해결하는 제도입니다(출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저는 이 영화의 글램핑 갈등을 굉장히 정교한 에코알레고리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의 더 거친 개발 갈등을 어느 정도 미학적으로 정제해 보여주는, 한계도 분명한 은유라고 봅니다. "자연은 상처를 기억한다" 수준의 암시로 마무리되는 방식이 감정적으로는 강렬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다소 안전한 착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제시하는 질문은 유효합니다. 우리가 "악인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상류에서 내려오는 오수는 멈추지 않습니다. 책임이 분산될수록 피해는 더 확실하게 집중된다는 것, 이 영화는 그 구조를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발 갈등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왜 저렇게 반대하지?"라는 시선이 생긴다면, 이 영화부터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상류와 하류의 거리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두 시간 안에 꽤 선명하게 체감하게 될 겁니다.
참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