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 개봉한 영화 〈신명〉은 주술과 정치를 결합한 오컬트 스릴러로, 개봉 전부터 실존 인물을 연상시킨다는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저 역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며 스크린 속 상징들이 뉴스에서 본 장면과 너무나 닮아 있어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손바닥의 왕(王) 자, 붉은 한복, 성형과 개명을 통한 신분 세탁, 심지어 계엄령 선포 장면까지. 이건 그냥 오컬트 장르물이 아니라, 현실 정치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윤지희(김규리)가 주술을 통해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서는 과정을 그리며, 동시에 탐사보도 PD 정현수(안내상)가 그 진실을 추적하는 이중 구조로 전개됩니다.
주술과 권력이 만난 오컬트 정치 스릴러
〈신명〉의 장르는 오컬트(occult)와 정치 스릴러의 결합입니다. 여기서 오컬트란 초자연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현상, 비밀스러운 의식을 다루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주술, 무속 신앙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을 소재로 삼는 것이죠. 영화는 어린 시절 분신사바를 통해 '보이지 않는 힘'에 매료된 윤명자가, 이후 전면 성형과 신분 위조를 거쳐 윤지희로 재탄생하고, 검사 출신 정치인 김석일(주성환)과 결탁해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영화가 주술을 단순한 공포 장치가 아니라, 권력자의 욕망과 불안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윤지희는 남자들을 이용해 자산과 인맥을 쌓고, 주술적 의식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손바닥에 새긴 왕자, 비밀스러운 붉은 한복 의식, 과거 희생시킨 인물들의 그림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긴장감을 높입니다. 영화는 약 118분의 러닝타임 동안 주술-정치-언론의 삼각 구조를 촘촘하게 엮으며, 권력이 비합리적 신앙과 결탁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정치권 실세 김충석(명계남)과 윤지희의 어머니 차인숙 등 주변 인물들은 권력-주술-재계의 연결고리를 더욱 공고히 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윤지희가 권력의 정상에 오르기까지 필요한 네트워크 자체를 상징합니다. 특히 탐사보도 PD 정현수가 윤지희와 김석일 주변의 의문사와 조작된 신분을 파헤치면서, 영화는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 사이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열린 결말과 불편한 메시지
〈신명〉의 결말은 명확한 권선징악 구조가 아닙니다. 진실이 상당 부분 드러났음에도, 윤지희는 법적·정치적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권력 중심부에 남아 있는 듯한 뉘앙스로 끝납니다. 이 부분이 저에게는 가장 씁쓸했습니다. 영화는 "악이 완전히 처벌받았다"는 통쾌함 대신, "비합리적 신앙과 권력 구조가 여전히 시스템 안에서 살아 있다"는 불편한 현실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쿠키 영상에서는 과거 주술 의식의 희생자로 보이는 남성이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이 암시되며, 윤지희의 주술과 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출처: 영화정보 포털 씨네21).
열린 결말(open ending)이란 이야기의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서사 기법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신명〉은 정의가 승리했다고 단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권력과 주술의 동맹을 언론과 진실만으로는 완전히 무너뜨릴 수 없다"는 냉소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는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과연 이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 건 누구인가? 진짜 '신명'을 바랐던 건 국민인가, 권력자인가?
저는 이 결말이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관객에게 너무 많은 짐을 떠넘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특히 실존 사건(이태원 참사, 계엄 시나리오 등)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주술과 음모론 프레임 안에 욱여넣는 방식은,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영화는 분명 풍자를 의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비극 뒤에는 한 사람의 주술이 있다"는 식의 단선적 서사로 흐를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영화 〈신명〉은 용기 있는 정치 풍자이자,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제가 극장을 나서며 든 생각은, 이 영화가 과연 현실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정치적 진영 싸움을 강화하는 도구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한 건 이 영화가 던진 질문들은 스크린 밖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신명〉을 본다면, 단순히 오컬트 스릴러로만 보지 말고 그 안에 담긴 현실 정치의 은유와 상징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후 남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우리 사회의 진짜 '신명'은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