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러닝타임 60분짜리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오래 머릿속을 맴돌 줄 몰랐거든요. 광화문을 질주하는 자동차, 짐승 얼굴의 저승사자, 그리고 문 앞에서 끝내 발을 내딛지 못하는 인물의 뒷모습. 영화 「중간계」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보고 나서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저승까지, 세계관 설정의 가능성과 한계
제가 직접 극장에서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파트는 오히려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 장례식장 장면이었습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막대한 돈을 번 재범이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귀국하는 설정, 썰렁한 빈소를 채우기 위해 가짜 조문객을 데려오는 장원, 특종을 노리는 방송국 PD, 체포를 목표로 움직이는 경찰, 그리고 돈을 뜯으려는 범죄자들까지. 각자의 욕망을 품은 인물들이 한 공간에 집결하는 이 구도는 블랙코미디로도, 누아르로도 충분히 뻗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불교 세계관에서 말하는 중음(中陰) 개념을 세계관의 바탕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중음이란 죽음과 다음 생 사이에 존재하는 과도기적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데, 티베트 불교의 『사자의 서』에도 상세히 기록된 개념입니다. 영화 속 '중간계'는 바로 이 중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공간으로, 도로와 고층 빌딩이 존재하지만 살아있는 자들과는 완전히 분리된 층위로 그려집니다.
문제는 이 흥미로운 설정이 충분히 발효되기 전에 영화가 너무 급하게 전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8부작 드라마의 3화를 잘라먹고 4화로 건너뛴 것 같은 감각이랄까요. 제 경험상 이런 서사적 단절은 나중에 아무리 상징을 쌓아 올려도 관객의 정서적 투자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물들에게 충분히 감정이입하기도 전에 저승사자 추격전으로 넘어가니, 액션을 구경하면서도 묘하게 공허한 느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원래 약 2시간 분량으로 기획된 이야기를 예산 문제 등으로 60분 수준의 파트 1 형식으로 압축한 결과라는 분석이 있는데(출처: 네이버 영화), 실제로 보면 그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여동생과의 관계, 장원의 서사, PD와 범죄자들의 동선이 모두 암시 수준에서 끊깁니다. 이게 의도된 여백인지, 제작 여건상의 생략인지 애매한 지점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곤란한 문제였습니다.
중간계를 구성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승과 저승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현실을 닮았지만 살아있는 자들과 분리된 층위
- 짐승 얼굴의 저승사자들이 영혼을 회수하려 쫓아오는 추격 구조
- 광화문 등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실사와 AI 합성 이미지를 결합한 시각적 구성
결말 해석, 그 문이 닫혀 있지 않았다는 것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은 결말부입니다. 주인공이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문 앞에 서는 장면. 제가 보기에 영화가 가장 날카롭게 기능하는 순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많은 관객이 "결국 못 돌아갔다"는 인상을 받고 나오지만, 저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안에서 그를 완전히 차단하는 외부 규칙이나 힘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습니다. 문은 닫혀 있지 않습니다. 그가 넘지 못하는 것이죠.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사후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 안에서 반복해 온 어떤 패턴에 관한 것입니다.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 그는 어머니의 죽음, 범죄로 쌓아올린 돈, 가족에게서 도망친 시간들, 법적 책임을 한꺼번에 마주해야 합니다. 중간계에 남는 선택은, 사실 그가 살아생전에도 수없이 반복해온 선택의 연장선이었던 겁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를 반복하다가 끝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보면서 뜨끔했습니다.
이 결말 구조는 서사심리학에서 말하는 회피형 서사 패턴(avoidance narrative)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회피형 서사란 주인공이 변화와 성장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선택을 반복하면서 이야기가 전진하지 못하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중간계」는 이 구조를 사후 세계라는 판타지적 설정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삶에서 비슷한 패턴을 돌아보도록 유도합니다.
다만 이 결말이 더 강하게 박혔으려면, 그 문 앞까지 오는 과정에서 재범의 죄의식과 가족 관계가 훨씬 촘촘하게 쌓였어야 했습니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결말의 상징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까지 깊이 내려오는 감각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이게 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지점이기도 합니다.
AI 영화라는 타이틀, 그게 이 영화를 도왔는가
「중간계」는 국내 최초로 생성형 AI(Generative AI)를 전면 도입한 장편 상업 영화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여기서 생성형 AI란 텍스트·이미지·영상 등을 학습 데이터 기반으로 새롭게 생성해내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칭하는 말로, 최근 영화·광고·게임 업계에서 빠르게 도입이 확산되고 있는 기술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극장을 나와서 곱씹어 보니 AI 이미지가 중간계의 이질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한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공간의 어색한 질감이, 오히려 세계관과 잘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그 기술적 어색함이 연출 의도인지 기술적 한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분석에 따르면 AI 기반 영상 제작 기술은 현재 프리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두드러지지만, 서사 완성도를 보완하는 도구로는 아직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중간계」는 이 한계를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내린 판단은 이렇습니다. AI 기술은 이 영화에서 하나의 텍스처이자 도구로 기능했고, 일부 장면에서는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극장을 나와서 이야기하는 건 프레임 안의 픽셀이 얼마나 정교했느냐가 아니라, 인물이 내린 선택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느냐입니다. 그 기준에서 보면, AI 타이틀은 이 영화가 스스로를 기술 시연의 장으로 내몬 셈이 되어버렸고, 역설적으로 서사 완성도에 대한 기대치만 높여놓은 효과를 냈습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AI를 활용하는 작품들이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 기술 도입 전에 서사의 완성도와 인물의 심리적 동선을 먼저 확립할 것
- AI 이미지의 이질감이 세계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출적으로 설계할 것
- 마케팅 타이틀이 관객의 기대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고려하여 홍보 방향을 정할 것
「중간계」는 한국영화계에서 AI를 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출발선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후 작품들에게는 반면교사가 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리하면, 「중간계」는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아이디어 초안이 그대로 개봉해버린 영화에 가깝습니다. 잘 만든 영화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보고 나서 그냥 잊혀지는 영화도 아닙니다. 결말의 상징, 중간계라는 공간이 품은 심리적 의미, AI 기술과 서사 사이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기묘한 후유증이 꽤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개봉 전 스틸컷이나 포스터를 먼저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 네이버 이미지 검색을 참고해 보시고, 판타지 심리극에 관심 있다면 일단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단, 깔끔하게 완결된 이야기를 기대하고 들어가면 당황할 수 있으니 그 점은 미리 알고 가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