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 〈왓치맨〉을 틀었을 때, 저는 이게 그냥 좀 어두운 히어로 액션 정도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화면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수백만 명을 죽여 수십억을 구한 선택이 옳은가, 그 위에 세워진 평화를 알고도 침묵하는 건 공범인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관객 앞에 아무 답 없이 던져놓고 끝납니다.
히어로 액션인 줄 알았는데, 공리주의 수업이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당황했던 건, 악당이 이미 계획을 다 실행한 뒤에 히어로들이 도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오지만디아스는 영웅들 앞에서 담담하게 말합니다. "나는 이미 버튼을 눌렀다"고. 막을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주인공들이 직면하는 건 정의 구현이 아니라, 이 거짓을 덮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오지만디아스의 논리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 정확히 닿아 있습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선의 기준으로 삼는 윤리 체계로, 개인의 희생이 더 많은 이들의 이익을 만들어낸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뉴욕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수백만 명을 죽이고, 그 공격을 닥터 맨해튼의 소행으로 위장해 핵전쟁 직전의 미·소를 강제로 단결시킵니다. 숫자로만 따지면 수십억 명의 목숨을 건진 셈이지만, 그 기반이 학살과 거짓이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보면서 제가 불편했던 건, 그의 계획이 실제로 효과를 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세계는 평화로워졌고, 핵전쟁은 멈췄습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 오지만디아스의 계획: 닥터 맨해튼 에너지를 복제한 폭발로 수백만 명 희생, 공통의 적 앞에 인류를 단결시킴
- 공리주의적 정당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더 적은 수의 희생을 감수한다는 논리
- 영화의 태도: 이 선택을 명백한 악으로 규정하지도, 영웅적 희생으로 미화하지도 않음
누가 감시자를 감시하는가 —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
영화 제목 '왓치맨'은 라틴어 경구 "Quis custodiet ipsos custodes?"에서 온 말입니다. 번역하면 "누가 감시자를 감시하는가"라는 뜻으로, 권력을 가진 존재를 견제할 또 다른 구조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를 묻는 문장입니다.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가 남긴 이 구절이 2009년 히어로 영화의 핵심 주제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 작품의 성격을 말해줍니다(출처: 나무위키 왓치맨).
영화 속 히어로들은 범죄를 감시하는 존재로 출발했지만, 결말에 이르면 오지만디아스 한 사람의 판단이 전 인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구조적 장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걸 보면서 제가 느낀 건, 히어로물이 대개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영웅은 선하다"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가정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는 도덕적으로는 끔찍하다고 느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을 뒤집으면 다시 핵전쟁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침묵을 택합니다. 그 침묵은 단순한 비겁함이 아니라, 감시자들조차 결국 더 거대한 상황 앞에서 공모자가 되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게 이 영화가 단순한 슈퍼히어로물과 완전히 다른 지점입니다.
로어셰크의 죽음 — 절대주의가 무너지는 방식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로어셰크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을 밝힐 거라고 봤는데, 영화는 그 기대를 완전히 배신합니다. 그는 마스크를 벗고 닥터 맨해튼 앞에 섭니다. 길을 비켜달라는 게 아니라, 차라리 죽이라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닥터 맨해튼은 실제로 그를 소멸시킵니다.
로어셰크는 절대주의(Moral Absolutism)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절대주의란 어떤 상황이나 결과와 무관하게 특정 행위는 언제나 옳거나 그르다고 보는 도덕 관점으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는 "살인으로 얻은 평화는 절대적으로 잘못됐고, 진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밝혀져야 한다"는 신념을 끝까지 꺾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 때문에 죽습니다.
제 경험상 이 장면이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닥터 맨해튼은 신에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로어셰크의 신념을 꺾는 대신 그를 지워버리는 쪽을 택합니다. 이건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냉소적인 시선처럼 읽혔습니다. 히어로물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로어셰크는 죽기 전에 자신의 조사 일기를 극우 성향의 신문사에 보내두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편집자가 쌓인 원고 더미 중에서 그 일기가 담긴 서류를 집어 드는 순간에서 암전됩니다. 그의 몸은 사라졌지만, 진실은 아직 폭발 직전의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 절대주의 vs 공리주의: 로어셰크는 결과와 무관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입장, 오지만디아스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입장
- 닥터 맨해튼의 선택: 로어셰크의 신념을 이해하면서도, 그 신념이 세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해 그를 소멸시킴
- 로어셰크의 유산: 일기 형태로 진실을 신문사에 전달해 두어, 열린 결말의 씨앗으로 남김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 거짓 위의 평화가 남긴 것
오지만디아스는 닥터 맨해튼에게 묻습니다. "내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하나요?" 닥터 맨해튼의 대답은 단 하나입니다. "Nothing ever ends."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지구를 떠납니다. 이 대사가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출처: 나무위키 왓치맨(영화)).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 대사가 위로가 아니라 경고라는 점이었습니다. 오지만디아스가 만든 평화는 닥터 맨해튼의 공격이라는 거짓 위에 세워진 것이고, 로어셰크의 일기가 공개되는 순간 그 구조물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영화는 그 가능성을 마지막 장면에 정확히 심어두고 끝납니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히어로 장르 공식의 전복이라는 측면에서, 이 결말은 상당히 의도적입니다.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서사라면 영웅이 악당의 계획을 막고 세계를 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왓치맨〉은 악당의 계획이 이미 성공한 뒤에야 히어로들이 진실에 도달하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성공을 묵인하는 것뿐입니다. 영화는 이 구조를 통해 "진짜 악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되돌립니다.
보고 난 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는 많지 않은데, 〈왓치맨〉은 그런 드문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인물들을 평가하기보다, 비슷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저는 어느 쪽에 설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신문사 편집자 앞에 그 일기가 놓여 있다면, 저라면 그걸 집어 들었을까요. 솔직히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 "Nothing ever ends": 거짓 위의 평화는 최종 해답이 아니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라는 경고
- 열린 결말의 의미: 로어셰크의 일기가 공개될 경우 평화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마지막 장면에 남겨둠
-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당신이 그 편집자라면, 진실을 세상에 내보낼 것인가
〈왓치맨〉은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망설여집니다. 러닝타임 내내 통쾌한 장면보다 무거운 장면이 많고, 결말도 카타르시스 없이 끝납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 질문이 남는다는 건, 그만큼 이 영화가 어딘가를 건드렸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장르에 대한 완전히 다른 시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단, 가볍게 보고 싶은 날에는 피하는 게 낫습니다. 이 영화는 보고 나서 생각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