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인데도 〈파묘〉 예고편을 보고 "이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극장 자리에 앉고 나서 후회했지만요. 오프닝부터 사운드가 심상치 않더니, 134분 내내 긴장을 한 번도 못 풀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극장을 나오면서 느낀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묵은 먼지를 털어낸 것 같은 묘한 개운함이었습니다.
오컬트 장르인 줄 알았는데, 역사물이었다
〈파묘〉를 "귀신 나오는 공포영화"로 기대하고 들어갔다면 중반부터 조금 당황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일반적으로 오컬트 영화는 초자연적 현상 자체를 공포의 핵심으로 삼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그 공포의 뿌리를 일제강점기 친일의 업보와 식민 잔재에 연결합니다.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귀신이 왜 거기 있는지가 더 무서운 구조입니다.
영화의 핵심 장치는 첩장(疊葬)입니다. 첩장이란 하나의 묘혈(墓穴)에 두 구 이상의 시신을 겹쳐 매장하는 행위로, 풍수지리에서는 극히 금기시되는 방식입니다. 영화에서 문제의 묘는 일본 다이묘 장군의 시신과 주술로 만들어진 오니(악귀)를 봉인한 자리에, 친일파 조상을 첩장해 놓은 이중 구조입니다. 즉, 한 가족의 저주가 아니라 친일 행위의 대가가 혈통을 타고 대물림된 것이라는 설정입니다.
제가 이 구조를 파악한 건 중반부를 넘어서였는데, 그 순간부터 화면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관의 뱀 문양, 묘지 주변의 지형, 인부가 처음 삽질하는 방향까지 전부 복선처럼 느껴졌습니다. 돌아보면 장재현 감독이 오컬트 장르 안에 역사 서사를 얼마나 정교하게 숨겨뒀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파묘〉가 다루는 핵심 역사 코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친일파 조상의 묘를 파헤치는 행위 자체가 반역의 업보를 끄집어내는 의식
-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반도에 박아놓은 쇠말뚝과 오니를 동일 선상에 배치
- 오니 퇴치가 단순한 퇴마가 아닌 식민 잔재 청산의 알레고리로 기능
음양오행으로 귀신을 잡는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솔직히 클라이맥스 전까지만 해도 "음양오행으로 어떻게 퇴치를 한다는 건지" 반신반의했습니다. 이게 일반적으로 퇴마물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영화에서 논리적으로 설득이 될지는 다른 문제니까요. 그런데 막상 클라이맥스를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오행(五行)이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다섯 가지 기운이 서로 생하고 극하는 관계를 이루는 동아시아 전통 세계관입니다. 영화에서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은 오니의 속성을 금(金)과 화(火), 즉 쇠와 불의 기운으로 판단합니다. 여기서 오니는 불타는 쇠칼을 휘두르며 등장하는데, 이 설정이 오행 상극(相克) 구조와 맞물립니다. 상극이란 어떤 기운이 다른 기운을 제압하는 관계를 의미하며, 금을 이기는 것은 화이고, 화를 이기는 것은 수(水)라는 원리입니다. 상덕은 이 논리를 따라 물에 젖은 나무(수+목)를 매개로 오니를 공략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예상 밖이었던 건, 상덕이 과학적 근거 없는 민속 논리를 고집하는 노인으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자기 논리를 스스로 검증하고 실행에 옮기는 전문가로 표현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묘안(墓眼)이라는 개념도 흥미로웠습니다. 묘안이란 풍수지리에서 묘의 기운과 지세를 읽는 전문적인 시각을 뜻하는데, 상덕 캐릭터가 단순한 퇴마사가 아니라 땅을 읽는 전문 직능인으로 설정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오행 논리와 클라이맥스 전투의 연결이 후반부에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방식으로 처리된다는 겁니다. 서사가 과밀해진 느낌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말로 수습하는 느낌"이라는 반응이 일부 관객에게서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초중반까지 쌓아온 공포의 리듬이 마지막에 히어로물에 가까운 톤으로 살짝 튀는 것도 저는 개인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라고 봤습니다.
결혼식 장면이 왜 뭉클했는지
공포영화 마지막에 결혼식이 나온다고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정보 없이 들어갔다면 그렇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장면을 보고 나서는 묘하게 눈가가 당겼습니다. 오니와의 싸움을 끝내고 나온 상덕이, 금발의 외국인 사위를 맞으며 화림·봉길·영근을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는 혈연(血緣) 중심 가족 개념의 해체라는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혈연이란 핏줄로 연결된 가족 관계를 의미하는데, 영화 전체에서 박지용 가문의 저주가 바로 이 혈연을 통해 대물림된다는 설정과 정확히 대비됩니다.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긴 사람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인정하는 상덕의 태도는, 혈통과 핏줄에 집착한 결과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여준 영화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파묘〉는 2024년 2월 개봉 후 국내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작품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상업 오컬트 영화가 이 규모의 흥행을 기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단순 공포물 수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이점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영상자료원도 이 작품을 2024년 주요 한국영화로 별도 분류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저는 이 작품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사의 과밀함, 후반부 캐릭터 감정선의 급가속, "친일은 나쁘다"는 당연한 결론을 넘어서는 복잡한 회색 지대까지는 닿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럼에도 국내 상업영화가 이 정도까지 식민 잔재와 집단적 트라우마를 장르 안에 녹여냈다는 건 분명한 성취입니다.
〈파묘〉를 아직 안 보셨다면, 공포 강도보다 이야기의 층위에 초점을 맞추고 보시길 권합니다. 귀신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다 파내지 못한 땅 밑의 이야기라는 감각으로 들어가면 훨씬 다르게 보일 겁니다.
참고: 파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