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분짜리 영화를 틀어놓고 중간에 멈추지 않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나 그리고 둘》을 처음 재생했을 때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큰 사건 하나 없이 한 가족의 일상만 따라가는 영화가 세 시간 가까이 지속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끝 크레딧이 올라올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이 글에서 차근차근 풀어보려 합니다.
대만 뉴웨이브라는 흐름 속에서 태어난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대만 뉴웨이브(Taiwan New Cinema)라는 맥락을 먼저 짚어봐야 합니다. 여기서 대만 뉴웨이브란, 1980년대 초 대만에서 국가 선전이나 상업 오락 중심의 영화 문법을 거부하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 변화를 사실주의적으로 포착한 영화 운동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스튜디오 세트보다 실제 거리에서, 스타 배우보다 일반인 같은 얼굴로, 자극적인 플롯보다 침묵과 기다림으로 영화를 찍은 흐름입니다.
이 운동의 공식적인 출발점은 1982년 옴니버스 영화 《광음적고사》로, 에드워드 양을 포함한 신진 감독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듬해 허우 샤오시엔 등이 만든 《샌드위치 맨》이 뒤를 이었고, 1987년에는 젊은 감독 54명이 '대만 뉴웨이브 선언'을 발표해 상업성만 좇는 영화계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 선언의 시기는 계엄령 해제와 맞물려 있었고, 사회적 해방의 기운이 영화 언어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에드워드 양은 이 흐름 안에서도 특히 도시 중산층의 고립과 현대화의 불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타이베이 스토리》,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거쳐 2000년 발표한 《하나 그리고 둘》은 그 탐구의 정점이자 유작이 됐습니다. 같은 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에드워드 양은 200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만 뉴웨이브의 핵심 미학적 특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롱테이크(long take): 편집 없이 카메라를 길게 유지해 인물의 시간을 관객이 함께 견디게 만드는 기법
- 로케이션 촬영: 인공 세트 대신 실제 거리, 가정, 학교를 배경으로 삼아 다큐멘터리적 생동감을 확보
- 비전문 배우 기용: 영웅이나 스타 대신 현실에서 마주칠 법한 얼굴로 인물을 채움
- 역사와 기억: 2·28 사건, 일본 식민지 시기 같은 공식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던 대만의 집단 기억을 서사 안으로 불러옴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낯선 사람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무너진 장면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NJ가 회사 협상 자리에서 말을 잃고 창밖을 바라보는 몇 초짜리 순간이었습니다. 저 역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자리에서 말 대신 침묵이 먼저 나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 장면이 유독 오래 남았습니다.
영화는 NJ의 처남 아디의 결혼식에서 시작합니다. 임신한 여자친구와 결혼하는 자리에 옛 연인이 찾아오고, 그날 밤 외할머니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가족은 일상의 균열 앞에 서게 됩니다. 이후 영화는 가족 구성원 각각의 시선을 번갈아 따라갑니다. 아버지 NJ, 어머니 민민(밍밍), 딸 팅팅, 막내 양양. 이들은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고민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NJ는 일본 출장에서 30년 전 첫사랑 셰리를 다시 만납니다.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셰리의 제안을 그는 끝내 거절하는데, 그 이유를 영화는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관객은 NJ의 표정과 침묵을 통해 스스로 해석해야 합니다. 민민은 할머니 병간호와 가사에 지쳐 요양소로 떠나고, 거기서 자신이 할머니에게 해줄 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너집니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의 삶이 텅 빈 것 같다는 그 공허감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 조용하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니 싶었습니다.
팅팅은 할머니가 쓰러진 일이 자신이 버리지 못한 쓰레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웃 리리의 전 남자친구 패티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지만 그는 결국 리리에게 돌아가고, 팅팅은 상실과 혼란을 혼자 견뎌냅니다. 그리고 양양.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놀림받는 이 아이는,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받은 뒤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합니다. 양양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자신이 보여주고 싶다고.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아이다운 순수한 발상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게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비유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앞모습, 즉 말과 행동만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도 보지 못하는 뒷면이 있고,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도 그 뒷면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양은 이 진실을 설명하는 대신, 여덟 살짜리 아이의 카메라로 조용히 증명합니다(출처: 브런치 영화 비평).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장점과 한계
《하나 그리고 둘》이 걸작이라는 데는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시각이 조금씩 다릅니다. 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 가족을 따뜻하고 완벽한 공동체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NJ 가족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각자의 상처를 혼자 감당하고, 끝내 모든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장례식장에 다시 모입니다. 현실의 가족이 실제로 그렇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독특합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조명, 구도, 배우의 위치, 소품 등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에드워드 양은 유리창이나 거울 반사를 자주 활용해 인물이 두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이 구도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는 전체를 볼 수 없다"는 주제를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여러 장면을 다시 돌려보면서 확인했는데, 이 장치가 얼마나 치밀하게 반복되는지 알고 나면 영화가 다르게 보입니다.
다만 비판적으로 보면 몇 가지 지점에서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팅팅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극, 즉 리리와 그 어머니 모두와 관계를 맺은 영어 교사를 두고 패티가 그를 살해하는 사건은 앞부분의 일상적인 호흡과 비교하면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집니다. 이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충격이 오히려 영화의 절제된 분위기를 일시적으로 깨뜨린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영화는 NJ 가족이라는 도시 중산층의 시선에 집중하기 때문에, 대만 사회의 다른 계층이나 주변부 현실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납니다. 경제적 위기나 사회 구조적 문제는 주로 NJ의 회사 위기와 인물들의 불안을 통해서만 제시되는데, 더 넓은 사회적 맥락을 기대한 분들에게는 제한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마지막에 양양이 할머니 영정 앞에서 편지를 읽는 장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고, 할머니처럼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고 말하는 그 순간은 어떤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을 줍니다. 죽음을 단절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삶의 일부를 배우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각, 그것이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나 그리고 둘》 러닝타임이 너무 긴데 집중해서 볼 수 있을까요?
A. 173분이 진입장벽이 된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고, 저도 처음에 그랬습니다. 다만 이 영화는 빠른 전개 대신 인물의 침묵과 표정에서 이야기를 쌓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느린 속도가 몰입을 방해하기보다 현실처럼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집중이 가능한 환경에서 한 번에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Q. 에드워드 양 감독의 다른 작품도 비슷한 스타일인가요?
A. 네, 에드워드 양의 전작들인 《타이베이 스토리》,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도 도시 중산층과 청년의 불안을 절제된 롱테이크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다만 《하나 그리고 둘》이 가족의 시선을 가장 넓게 배분하고 온도 면에서 가장 따뜻한 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고, 저 역시 그렇게 느꼈습니다. 에드워드 양이 처음이라면 이 작품부터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Q. 양양이 뒷모습을 찍는 장면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A. 양양의 행동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가장 단순하게 압축하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뒷모습을 직접 볼 수 없듯이, 자기 삶과 감정의 전체를 스스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장면이 철학적 선언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직관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처음 보는데, 이 작품이 입문용으로 적합한가요?
A. 대만 뉴웨이브 입문으로 이 영화를 추천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러닝타임과 절제된 연출 때문에 다소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허우 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처럼 호흡이 조금 더 가벼운 작품으로 먼저 흐름을 파악한 뒤 이 작품으로 오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느 순서든 이 영화는 결국 보게 되는 작품이기는 합니다.
결론
《하나 그리고 둘》은 모든 문제의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가족은 장례식이 끝나도 여전히 서로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하고, 삶은 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타인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려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교 없이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173분을 견딘 뒤에 가족과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역할을 한 셈입니다.
느린 전개와 긴 러닝타임은 분명 진입장벽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에드워드 양이 왜 마지막 작품으로 이 이야기를 골랐는지가 조금씩 이해됩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어느 조용한 저녁에 혼자 틀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