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19 사람과 고기 (노년 빈곤, 무전취식, 존엄) 고기는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그걸 극장 좌석에 앉아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2025년 10월 개봉한 영화 「사람과 고기」는 폐지 줍는 노인, 떠돌이 시인, 골목 채소 장수 세 사람이 '공짜 고기'를 찾아 다니며 벌이는 무전취식(無錢取食)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웃기는 장면이 꽤 있었음에도 마음이 전혀 가볍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노년 빈곤 — 고기 한 점이 존엄의 문제가 되는 사회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막연하게 "노인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는 말을 뉴스에서 접해왔습니다. 그런데 형준(박근형)이 폐지를 실은 수레를 끌면서 고기는커녕 단백질 섭취 자체가 불가능한 삶을 사는 모습을 스크린으로 마주하니, 그 숫자들이 갑자기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더라고요.통계청.. 2026. 7. 17. 플래닛 (줄거리 결말, 부녀 서사, 신파 논쟁) 러시아 재난 SF 영화가 할리우드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품은 채 플래닛(원제: Mira, 2022)을 봤고,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재난 스케일보다 부녀 관계에 훨씬 더 많은 무게를 실은 작품인데, 이게 장점인지 한계인지를 두고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립니다. 저도 그 경계 어딘가에서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줄거리와 결말 — 우주와 지상을 잇는 부녀 서사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해 보입니다. 러시아 우주정거장이 거대한 소행성을 관측하는데, 공식 발표는 "지구를 비켜가며 유성우 쇼만 펼쳐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입니다. 정부도 시민도 들떠 있고, 블라디보스토크 사람들은 옥상에 올라가 유성우를 기다립니다. 저도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전형적인 재난물의 도.. 2026. 7. 8. 아이언 도어 (밀실 스릴러, 결말 해석, 열린 엔딩)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틀기 전까지, 저예산 밀실물이라는 말에 기대치를 한참 낮춰 놨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답답하고 불쾌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타입의 영화라는 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아이언 도어(Iron Doors)〉는 2010년 독일에서 제작된 1~2인극 밀실 미스터리로, 결말을 두고 지금까지도 해석이 엇갈리는 작품입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영화인데,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유일한 미덕이기도 합니다.밀실이라는 공간이 던지는 질문들영화의 설정 자체는 단순합니다. 주인공 마크(엑셀 베데킨트)는 전날 술에 취한 이후 기억이 끊긴 채, 창문도 없는 콘크리트 방에서 눈을 뜹니다. 방 안에는 .. 2026. 7. 4. 똑똑똑 리뷰 (줄거리, 결말, 원작 비교) OTT를 켜놓고 뭘 볼까 30분째 고르다가 결국 그냥 보이는 거 누르는 밤이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본 게 딱 그런 밤이었습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이름 보고 별 기대 없이 눌렀는데, 끝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었습니다.오두막 안에서 시작되는 심리전영화는 처음부터 공간을 최대한 좁게 씁니다. 숲속 오두막, 네 명의 침입자, 그리고 동성 부부 에릭·앤드류와 그들의 딸 웬. 이게 전부입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봤을 때는 전형적인 홈 인베이전 스릴러(Home Invasion Thriller)처럼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홈 인베이전 스릴러란 낯선 침입자가 주거 공간을 점령하면서 벌어지는 공포를 다루는 장르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2026. 6. 23. 뉴 문 (실연 심리, 삼각관계, 벨라 주체성) 실연 후 상대의 환영을 보려고 일부러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이 로맨틱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영화가 성공한 걸까요, 아니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요. 2009년 개봉한 트와일라잇 사가 2편 〈뉴 문〉을 다시 떠올리면서, 저는 그 질문을 계속 붙들게 됩니다. 아름답게 찍힌 우울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직접 보고 나서야 제대로 느꼈습니다.실연 심리: 우울을 미학으로 포장할 때 생기는 일일반적으로 〈뉴 문〉은 "이별을 감성적으로 그린 멜로"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실제로 보면서 그 틀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멜로보다 실연 심리(post-breakup psychology)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감정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실연 심리란 이별 이후 개인이 경험하는 심리적 충격과 회복 과정을 가리키는.. 2026. 6. 2.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출생의 비밀, 성장 서사, 부성애)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냥 액션 스릴러 정도로 예상하고 틀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괴물을 삼킨 아이"라는 제목이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었다는 걸 그때서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출생의 비밀과 뒤틀린 부성애, 그리고 한 소년의 성장 서사가 맞물린 작품입니다.출생의 비밀이 만드는 아이러니화이는 세 살 때 '낮도깨비'라는 5인조 범죄 조직에게 유괴된 소년입니다. 그는 자신이 재계 거물 임영택과 서영화 사이에서 태어난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유괴범 다섯 명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자랍니다. 학교 대신 사격과 격투, 운전과 작전 수립을 배우면서요.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친했던 친구와 시험 성적을 두고 내기를 했던 기억이 .. 2026. 5. 26.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