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라이트하우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남자와 등대 하나만 나오는 영화입니다. 흑백 화면에 거의 정사각형인 화면비, 알아듣기 힘든 19세기 뱃사람 말투까지 겹쳐서 끝나고 나면 '대체 뭘 본 거지'라는 느낌이 먼저 들기 쉽습니다.
이 영화를 상징 하나하나로 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인어, 촛대, 바다신, 외눈 갈매기, 로브스터 통 속의 머리… 그래서 이 글에서는 범위를 좁혀, 이야기의 방향이 크게 꺾이는 장면 세 개만 골라 순서대로 읽어 보려 합니다. 세 장면을 이어 보면 두 등대지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꽤 선명해집니다.
먼저 짚어 둘 작품 정보
| 항목 | 내용 |
|---|---|
| 감독·각본 | 로버트 에거스 (각본은 동생 맥스 에거스와 공동) |
| 출연 | 로버트 패틴슨(에프라임 윈슬로), 윌럼 더포(토머스 웨이크) |
| 형식 | 35mm 흑백 필름, 1.19:1 화면비 |
| 첫 공개 | 2019년 5월 칸영화제 감독주간,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FIPRESCI) 수상 |
| 국내 공개 | 극장 개봉 없이 VOD로 공개, 2020년 3월 블루레이 출시 |
| 주요 후보 | 제92회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재린 블래슈키) |
| 출발점 | 에드거 앨런 포의 미완성 단편 「등대」에서 맥스 에거스가 시나리오를 시작 |
1.19:1이라는 비율은 흔히 보는 와이드 화면보다 훨씬 좁습니다. 씨네21 특집에서는 이 비율을 관객에게 주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장치로 설명합니다. 화면 양옆이 잘려 나간 만큼 두 사람의 얼굴과 좁은 숙소가 화면을 꽉 채우고, 관객은 둘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단할 근거를 거의 얻지 못합니다.
촬영 무대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제작진은 원하는 모양의 등대를 찾지 못해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케이프 포추에 약 21m 높이의 등대를 직접 세웠습니다. 웨이크의 고풍스러운 말투 역시 에거스 감독이 19세기 말 소설과 기록 속 뱃사람들의 말을 조사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사가 낯설게 들리는 건 번역 탓만이 아니라 의도된 거리감에 가깝습니다. 이 말투 덕분에 웨이크의 미신과 저주는 처음엔 노인의 허풍처럼 들리다가, 갈매기 장면 이후에는 예언처럼 들리기 시작합니다.

포스터 자료: 라이트하우스 (A24 / Wikipedia file) / 비교 편집: 영화는 영화다
⚠ 여기부터 중반 이후 전개와 결말 스포일러입니다
장면 하나 · 물탱크 옆의 외눈 갈매기
윈슬로는 4주 계약으로 섬에 왔습니다. 웨이크는 그에게 요강 비우기, 무거운 등유통 나르기, 등대 칠하기 같은 일만 시키고 꼭대기의 등불 방에는 절대 들이지 않습니다. 그 사이 외눈 갈매기 한 마리가 윈슬로를 계속 따라다닙니다. 웨이크는 바닷새를 죽이면 불운이 온다고, 갈매기에는 죽은 뱃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경고합니다.
떠나기 하루 전, 윈슬로는 식수 물탱크에 죽은 갈매기가 빠져 있는 걸 발견하고, 덤벼드는 외눈 갈매기를 돌에 내리쳐 죽입니다. 곧바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폭풍이 몰려와 교대선이 오지 못합니다.
이 장면을 읽는 법
여기서 중요한 건 미신이 맞았느냐가 아니라, 이 순간부터 영화의 시간이 무너진다는 점입니다. 폭풍 이후 윈슬로는 교대선이 하루 늦었다고 생각하는데 웨이크는 이미 몇 주가 지났다고 말합니다. 관객도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갈매기를 죽인 행위는 섬의 규칙을 처음으로 어긴 일이고, 그 뒤로 영화는 믿을 수 있는 기준점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습니다. 금기를 어긴 대가가 초자연적인 벌인지, 고립이 만든 착란인지 끝까지 정하지 않는 것이 에거스의 방식입니다.
장면 둘 · 테레빈유와 항해일지
술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단맛을 섞은 테레빈유까지 마십니다. 그날 밤 거대한 파도가 숙소 벽을 뚫고 들이닥치고, 다음 날 아침 윈슬로는 웨이크의 항해일지를 찾아 읽습니다. 거기에는 윈슬로가 술에 취해 일을 제대로 못 하니 급여 없이 해고해야 한다는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이 장면이 결정적인 이유는 앞서 이미 한 번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윈슬로는 술에 취해 자기 진짜 이름이 토머스 하워드이고, 캐나다 벌목장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감독관 에프라임 윈슬로가 물에 빠졌을 때 일부러 구하지 않은 뒤 그 이름을 쓰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항해일지는 단순한 근무 평가가 아니라, 비밀을 아는 상대가 자기에 대한 기록을 쥐고 있다는 공포로 다가옵니다.
두 사람 중 누가 거짓말을 하나
보트가 도끼로 부서졌을 때 웨이크는 하워드가 한 짓이라고 우깁니다. 하워드는 자기가 본 장면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항해일지를 둘러싼 말다툼 끝에 하워드는 웨이크를 때려눕히고 개처럼 끌고 다니기까지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워드의 눈에 웨이크는 인어로, 죽은 진짜 윈슬로로, 바다신처럼 보이는 형상으로 번갈아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장면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나'라는 질문 자체가 무너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통제하려고 이야기를 바꾸고, 관객은 하워드의 눈으로만 보기 때문에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장면 셋 · 렌즈 앞의 비명과 바위 위의 몸
하워드는 웨이크를 등대 아래 구덩이에 산 채로 묻으려 하고, 웨이크는 의식을 잃기 전에 등불을 들여다본 자에게 프로메테우스 같은 벌이 내린다고 말합니다. 하워드는 열쇠를 빼앗지만, 다시 일어난 웨이크가 도끼를 휘두르고 결국 하워드가 그를 죽입니다. 마침내 등불 방에 오른 하워드는 프레넬 렌즈가 열리는 순간 그 안에 손을 넣고 비명을 지르다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집니다.
마지막 화면에서 하워드는 벌거벗은 채 바위 위에 누워 있고, 갈매기들이 그의 내장을 쪼고 있습니다. 불을 훔친 대가로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거의 그대로 옮긴 이미지입니다. 영화는 렌즈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보여 주지 않습니다. 하워드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 진실이든 구원이든, 영화는 그걸 손에 넣은 순간이 곧 파멸의 순간이었다는 사실만 남깁니다.
세 장면을 겹쳐 놓으면
| 장면 | 하워드가 어긴 것 | 돌아온 결과 |
|---|---|---|
| 외눈 갈매기 | 섬의 금기(바닷새를 해치지 말 것) | 폭풍, 시간 감각의 붕괴 |
| 항해일지 | 상관의 기록과 권위 | 서로의 서사를 빼앗는 싸움 |
| 등불 방 | 허락되지 않은 빛 | 추락과 갈매기에게 먹히는 결말 |
표로 놓고 보면 하워드는 한 번에 무너진 게 아니라 단계마다 선을 하나씩 넘었습니다. 위키백과의 작품 분석 항목에서도 젊은 등대지기는 프로메테우스로, 나이 든 등대지기는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로 읽는 시각을 소개합니다. 빛을 독점한 노인과 그 빛을 훔치려는 젊은이, 그리고 둘을 지켜보는 갈매기. 세 장면은 결국 같은 신화를 세 번에 나눠 들려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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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위키백과(The Lighthouse, 2019 film), 씨네21 「라이트하우스를 통해 살펴보는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작품 세계」(2020) / 씨네21,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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