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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고기 (노년 빈곤, 무전취식, 존엄) 고기는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그걸 극장 좌석에 앉아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2025년 10월 개봉한 영화 「사람과 고기」는 폐지 줍는 노인, 떠돌이 시인, 골목 채소 장수 세 사람이 '공짜 고기'를 찾아 다니며 벌이는 무전취식(無錢取食)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웃기는 장면이 꽤 있었음에도 마음이 전혀 가볍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노년 빈곤 — 고기 한 점이 존엄의 문제가 되는 사회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막연하게 "노인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는 말을 뉴스에서 접해왔습니다. 그런데 형준(박근형)이 폐지를 실은 수레를 끌면서 고기는커녕 단백질 섭취 자체가 불가능한 삶을 사는 모습을 스크린으로 마주하니, 그 숫자들이 갑자기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더라고요.통계청.. 2026. 7. 17.
이탈리안 잡 (결말 비교, 느와르, 케이퍼) 솔직히 처음에는 2003년판만 봤을 때 "이 정도면 하이스트 영화로 충분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미니 쿠퍼 추격전, 교통망 해킹, 속 시원한 배신자 응징까지. 그런데 1969년 오리지널을 본 뒤로는 생각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데 결말이 주는 여운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두 편 모두를 더 흥미롭게 만들어 줬습니다.1969년판 결말 — 절벽 위 버스가 말하는 것1969년 오리지널 「이탈리안 잡」은 토리노에서 금괴 강탈에 성공한 뒤, 도주하던 버스가 알프스 산길 절벽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채로 끝납니다. 한쪽에는 사람들이, 다른 쪽에는 금이 실려 있어서 금을 건지려 하면 버스가 추락하고, 버스를 지키려면 금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찰리가 "내게 좋은 생각이 떠.. 2026. 7. 16.
달콤한 인생 (배신의 구조, 감정의 대가, 허무의 결말)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스타일리시한 액션 영화인 줄만 알았습니다. 이병헌이 멋있게 싸우는 장면들만 기억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유리창 앞에서 혼자 주먹을 휘두르는 그 장면이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은 단 한 번의 선택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씁쓸한 영화입니다.배신의 구조 — 폭력 세계에서 인간적인 선택은 곧 죄가 된다이 영화의 장르는 한국 느와르(Korean Noir)입니다. 여기서 느와르란 원래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인데, 영화 용어로는 도덕적 모호함, 폭력, 배신이 뒤엉킨 어두운 세계관을 가진 장르를 가리킵니다. .. 2026. 7. 15.
로드무비 (퀴어영화, 엇갈린사랑, 비극결말)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2002년 한국 영화 중에 이런 작품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로드무비」는 동성 간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퀴어 로드무비로, 노숙자 신세가 된 전직 산악인 대식과 몰락한 펀드매니저 석원, 그리고 우연히 합류한 여인 일주, 세 사람이 길 위에서 서로의 상처를 교차시키는 이야기입니다. 끝까지 누구도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결말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길 위로 내몰린 사람들 — 배경과 인물제가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첫 장면부터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화면이 밝지 않았고, 인물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기보다 그냥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대식은 한때 이름 있는 산악인이었지만, 자신이 남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숨기.. 2026. 7. 14.
더 우드맨 (가해자 시점, 재사회화, 열린 결말) 아동 성범죄 전과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2004년에 실제로 존재합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저도 반사적으로 손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서는, 이 영화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편함을 무기로 쓰되, 그 불편함을 끝까지 책임지려 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입니다.가해자 시점 영화의 윤리성, 실제로 보니일반적으로 아동 성범죄를 다룬 영화라 하면 피해자의 회복 서사나 수사극 형식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더 우드맨」은 정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가해자인 월터의 시선 안에 관객을 끝까지 가둬 두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계 자체가 처음에는 윤리적으로 불편했습니다. 가해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행위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그를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 2026. 7. 13.
디 엔드: 인류 최후의 날 (줄거리, 결말해석, 종말스릴러) 밤새 볼 생각 없이 틀었다가 새벽 두 시까지 화면을 놓지 못한 영화가 있습니다. 스페인 스릴러 〈디 엔드: 인류 최후의 날〉(원제 Fin, 2012)이 바로 그랬습니다. 폭발도, 좀비도 없는데 이상하게 손에 땀이 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제가 직접 본 경험과 함께 정리해 봤습니다.조용한 소멸 — 이 영화의 종말은 왜 다를까종말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왜 인류 종말 영화는 항상 폭발이나 바이러스로 시작할까?" 저는 그 질문을 오래 품고 있다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다른 답을 만났습니다.〈디 엔드: 인류 최후의 날〉의 종말은 이른바 '조용한 소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조용한 소멸이란, 전쟁이나 재난처럼 가시적.. 2026.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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